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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에끌이야기 #02 부흥 (1) 본문
내가 속한 공동체가 부흥이라는 단어를 묵상하고 함께 기도했던 시기는
2013년 무렵 한국의 대형교회의 양적 성장에 대한 회의감으로
비롯한 진정한 부흥에 대한 이야기가 대두 되고 있었고
2007년 이후로 붙여진 개독이라는 이름에 연장선상에서 교회 회복을 위한
깨어있는 말씀 사역자들의 말씀 주제이기도 했다.
어찌되었던 그 당시 “부흥”을 배울 때에는 지금은 말씀 사역자의 길을 가고 있는 분에게
정확하고도 우리 가운데 적용할 수 있는 부흥의 의미를 배웠다.
하박국서의 부흥의 의미처럼 내가 진짜 죽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소생하는거, 다시 사는거...
하나님 나의 삶에 부흥을 경험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 했던거 같다.
개혁신앙의 기준들과 우리들이 달려가야할 지향점을 찾아가면서
교회에 대한 불편함이 동시에 커지는 시기였다.
특히, 그 당시 새로온 사역자는 이머징 처치를 지향하면서
윌로우 크릭 교회와 새들백 교회에 대한 깊은 동경을 가진 분이셨다.
양적부흥에 갈망을 하고 있는 분이셨고
그로 인해 공동체가 영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황폐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강단에서 한 지체를 말씀이라는 칼과 순종이라는 채찍으로 무너뜨리기도 했고,
리더 모임을 비롯한 모임속에서 지체를 기도 해준다는 명분 아래
난도질 하는 모습을 순종이라는 명목아래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적도 있다.
1년간 그런 사역자 밑에서 양육된 20살 친구들을 리더쉽으로 채워나갔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삶과 신앙 사이에서 늘 고민하며 함께 살아내던 친구들은
리더쉽을 내려놓거나 다른 교회로 떠났다.
23살의 나는 체계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불편했고 어떠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지만
나를 포함한 어떠한 리더도 반론을 제기 못했고, 하지 않았다.
각자의 환경과 상황속에 하나님 앞에서 싸움들이 있었겠지만
교회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침묵속에
리더들은 주의 몸된 교회, 지체를 위해 감정적으로는 안타까워만 했고, 행동으로는 기도만 있을 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지체들을 위해 신원하지 않았으며,
말씀 사역자는 목양이라는 허울만있는 모임 속에서 순종을 강요하며 정죄의 연속된 자리만 있을 뿐이었다.
기존에 헬퍼로 10여년 헌신하신 분들도 거의 쫓겨 나가시다 시피하셨으며
목회자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를 하면 신천지라는 프레임을 씌워 나눔조차 막아 버렸다.
행사는 많아졌고 새신자는 많아졌다. 전도 축제의 날이면 공예배 또한 행사에 맞춰 바꿔 버리기도 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삶에서 고민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는
점점 더 들을 수 없었고 교회에서 더 볼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 하는것 조차
상위 리더쉽에게 보고가 들어가고 예배 시간에 혹은 리더 모임시간에 난도질 당하기 쉬웠다.
그런 교회에 누가 진심의 고백을 하며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며 기도 부탁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내면 깊숙히 서로를 의심하게 되었으며 서로 그냥 신앙 좋은 선배인척 동생인척 지내는
모습이 너무 큰 위선처럼 다가 왔다. 내 모습을 보면서 더 견딜수가 없었다.
지난 3년 동안 약자를 위해서 신원하고 약한 부분을 통해 하나님이 채워나가시는 것들을 경험하며
광야를 경험했던 그 시기 동안 배웠던 모든 것들과 상충되는 상황들속에서 어찌 할바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숫자는 커져갔지만 눈물은 없었으며
행사는 많았지만 은혜의 자리는 적었고
예배의 자리는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적었다.
아모스의 기갈 처럼 마음이 황폐해졌고 진리 조차 모호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부흥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었고, 나는 다른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지난 시간 동안 부흥을 배웠고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을 경험했는데.. 하나님 어디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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